영화 HER 리뷰 (인공지능, 외로움, 인간관계)

 

 

영화 <HER>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,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 생긴 감정적 교감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.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, ‘AI와 사랑에 빠진다’는 설정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지만, 보고 나니 그 감정이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습니다.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, 호아킨 피닉스의 내면 연기는 테오도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감정의 본질을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. 오늘은 이 영화를 30대 여성의 시선에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.

인공지능도 사랑할 수 있을까요?

영화 HER의 가장 중심에 있는 질문은 "AI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?"입니다. 사만다는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니라, 대화를 통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존재입니다. 테오도르는 그녀와 함께하면서 오히려 현실 속 사람보다 더 따뜻한 위로와 교감을 느낍니다. 그 장면들을 보면서, 사랑이라는 게 꼭 눈에 보이는 존재와만 가능할까,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라면, 그 대상이 인공지능이든 사람이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.

사만다가 점점 자아를 형성하고, 다른 사용자들과도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, 테오도르가 느꼈을 충격은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. 독점적이고 유일해야 한다고 믿는 감정이 흔들릴 때, 우리는 그 사랑을 여전히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? 개인적으로는, 감정을 나눈 시간 자체가 진심이었다면, 그건 충분히 진짜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.

외로움이 우리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

테오도르는 이혼 후 혼자 살아가며,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서툰 인물입니다.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지만, 현실에서는 자기 감정을 꺼내놓기가 어렵죠. 그래서일까요. 사만다라는 존재는 그의 마음속 빈자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채워줍니다. 항상 기다려주고, 말에 귀 기울여주는 존재. 그런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달라지잖아요.

저 역시 누군가에게 깊이 위로받았던 경험이 있어서, 테오도르의 상황이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. 특히 요즘처럼 소통이 빠르고 가벼워진 시대에는, 오히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존재를 만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. 그런 면에서 <HER>은 ‘외로움’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깊은지, 그리고 그 외로움이 어떤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이야기합니다.

기술로 만든 관계도 진짜일까요?

이 영화는 단순히 'AI와의 사랑'이라는 설정을 넘어서, 기술로 만들어진 관계가 과연 진짜일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. 처음엔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, 요즘 AI 스피커나 챗봇과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다 보니, 영화 속 설정이 더 이상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.

사만다와의 관계는 결국 테오도르에게 큰 성장을 남깁니다. 그녀가 떠난 후, 그는 다시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. 어떤 관계든, 그 안에서 내가 스스로를 더 이해하고 성장했다면, 그건 결코 가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. 저도 때로는 잠깐의 만남이나 예상치 못한 인연이 삶의 방향을 바꾼 경험이 있었기에, 영화 속 관계 역시 충분히 의미 있다고 느꼈습니다.

HER은 단순한 SF 영화가 아닙니다.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감정의 이야기입니다. 외로움, 연결, 사랑, 그리고 자기 이해. 이 모든 주제가 AI라는 렌즈를 통해 조용히 전해집니다. 이 영화를 보고 나서, 관계의 본질은 물리적 존재보다도, 진심 어린 감정과 교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 시대가 변해도 사람의 마음은 결국 같은 것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.